눅24:44~49을 보게 되면, 구약(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에서 예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그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46절,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 내용인데, 이것은 십자가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47절, 회개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선교’이다. 복음이 모든 민족, 땅끝까지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세계선교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다. 모든 민족, 땅끝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후에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다.”고 한다. 증인은 법정 용어로서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다. 목격한 사실 그대로를 증거하는 자가 증인이다. 제자들은 예수와 동거동락을 한 목격자들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증거하고 전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의 증인, 제자들에게 반듯이 필요한 것이 있다. 복음 사역자, 선교사에게 반듯이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성령’이다.
49절이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런데 왜? 제자들에게 성령이 필요한가? 제자들은 예수를 3년이나 가까이서 따르며, 동거동락하며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었다. 가까이서 주님의 인격과 삶을 보았고, 수많은 기적들(병치유, 축귀, 죽은자 살림, 오병이어 등)도 보았다. 그런데 제자들을 보라. 특별히 십자가 고난 앞에 직면했을 때, 그 앞에서의 반응을 보라. 하나같이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된다. 가롯 유다는 은 30에 배신했다.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한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은 다 도망간다.
무슨 의미인가요? 육신적인 제자들은 고난이 왔을 때, 하나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이다. 나의 의지와 능력만으로는 주를 따를 수도 없고,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나는 역경과 고난 앞에서, 무너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이런 제자들을 잘 알았기에,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명령이 ‘이 성에 머물라!’명령한다. 왜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위로부터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다. 제자들은 이 명령에 순종한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라. 행1:13,14절,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다락방에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고 기도에 힘쓰는 것을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니, 약속하신 성령을 기도하는 공동체에 부어주신다.
행2:1~4이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현장이다. 영적 부흥의 현장이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보라. 길선주 장로님의 회개로 시작한 부흥이 전국으로 퍼졌다.
필자는 젊은 날에 제주에서 부흥을 경험했다. 대학교에서 함께 동역했던 친구 후배들 30여 명이 목회자 선교사로 헌신했다. 필자가 출석하던 작은 교회 청년들에게 부흥이 임했다. 후배들 가운데 목회자, 선교사들이 20여 명 배출되고, 사모들도 20여 명 배출되었다. 당시 부흥의 결과이다. 당시 우리는 모이면 뜨겁게 예배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친놈처럼 복음을 전했다. 필자는 당시 큰 은혜를 경험하였고 개척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리고 지난 30여 년 이 한길을 달려왔다. 부흥이 임할 때, 거룩이 회복되고 하나 됨이 회복된다.
오늘 우리도 이 부흥을 사모한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사모한다.
왜?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고 부흥을 사모하는가? 이 마지막 시대에 신앙의 순결을 지켜내고 예수의 증인으로, 끝까지 주를 따르는 제자로서 사역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주께 쓰임 받는 복음 사역자, 선교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을 보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주님의 사역을 계승한다. 고난이 와도 두려움 없이 힘 있게 복음 사역을 감당한다. 하나같이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길을 갔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기 이전과 이후, 제자들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고 영적 부흥을 갈망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이다.
주여!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오니 약속한 성령을 부어주소서! 나의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부어주소서!
영적 부흥을 허락하소서!
주의 증인으로서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개척선교사로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게 하소서
주여! 거룩한 부흥을 허락하소서!
우리 교회를 정결케 하소서!
거룩을 회복하고, 하나 됨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래서 복음으로 말미암는 통일한국 이루소서!
세계선교 감당하는 선교한국 이루소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