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门徒之道)
(눅14:25~35)
오늘날 한국교회(韩国教会)가 교인들은 많은데, 주(主)를 따르는 제자(门徒)는 적다고 말하고,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이 급속히 상실되고 있다고 말한다. 세속화 되어가는 우리교회를 향한 뼈아픈 지적이라고 본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해 본다. 나는 지금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교회(教会)를 왕래만 하는 교인인가? 아니면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门徒)인가?
눅14:25~35은 주님께서 친히 제자도(门徒之道)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는 어떤 사람인지, 제자의 조건을 밝히 말씀해 주고 있다. 제자(门徒)의 조건은 무엇인가?
Ⅰ. 첫 번째로, 제자(门徒)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爱)하는 자이다.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주(主)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 자매, 처자식을 사랑(爱)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라는 것이다. 부모, 형제, 처자식보다도 심지어는 자기목숨보다도 주님을 먼저 사랑(爱)해야하는 것이다. 우리인생의 첫 자리에 주님을 모시라는 뜻이다. 본훼퍼는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门徒)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응답하지 않고 복종의 행위로 응답한다. 믿는 사람만이 복종하고 복종하는 사람만이 믿는다.”
우리 주님은 이 부르심에 헌신한 제자(门徒)들과 함께 3년 동안 공생애 생활을 했다. 주님은 그를 따른 제자(门徒)들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 주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계속해서 제자들을 부르고 계시고, 우리들을 당신의 제자(门徒)로 세우시기를 원하는 줄로 믿는다.
주(主)를 본받고 따랐던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가 예전에 가치 있게 여겼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빌3:7~9). 주님을 첫 자리에 모셨기 때문이다. 예수(耶稣)가 전부가 되었고, 그분께 전 인생을 온전히 위탁했다. 우리들 역시 갈보리십자가(十字架)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주를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우리인생의 보좌, 첫 자리에 주님을 당연히 모셔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에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主)의 제자(门徒)들이 다 되기를 소망한다.
Ⅱ.두 번째로, 제자(门徒)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使命)을 감당하는 자이다.
27절에서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耶稣)님이 지신 십자가(十字架)이다. 예수님께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십자가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주님은 타락한 인류구원을 위해 이 땅에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다. 따라서 십자가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사명(使命)이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 십자가사명(十字架使命)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셨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가셨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십자가(十字架)를 묵상할 때, 나의 십자가는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사명(使命)으로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나의 십자가(十字架), 나의 부르심의 사명이 무엇인가? 내 직장, 일터현장으로 불러주신 우리 각자의 사명(使命)이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 사명이 나의 십자가가 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라고 고백한다. 바울의 사명(使命)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는 것’이었다. 이 사명(使命)이 바울의 십자가(十字架)요. 그의 인생의 푯대가 되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꼭 따라오는 것은 ‘자기부인’이다. 십자가와 자기부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막9:34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한다. 십자가(十字架)는 지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주님도 십자가의 쓴잔을 피하고 싶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기도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당신의 뜻을 굴복시켰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가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고난이 있지만 우리주님은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신다. 그리고 그 십자가(十字架), 사명(使命)감당의 길을 갈 때, 주님은 비로소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여기시고 함께해 주신다(마28:19,20). 우리가 기억할 것은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때, 십자가(十字架) 고난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반드시 부활(复活)의 영광이 있다는 진리(롬8:18)이다. 우리 모두가 사명(使命)감당의 길 즉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십자가(十字架) 고난 뒤에 나타나는 찬란한 부활(复活)의 영광을 바라보는 주의 제자(门徒)들 다 되기를 바란다.
Ⅲ. 세 번째로, 제자(门徒)는 믿음(信心)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이다.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다.
성경에는 상식과 이성을 초월해서 믿음(信心)으로 나아간 믿음의 용사들이 즐비하다. 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은 그가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한다(창22).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아마도 그의 생각과 이성으로는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반응했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을 보라(삼상17).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블레셋 용사인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 싸운다. 도무지 우리의 이성과 상식으로는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信心)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다. 이삭이 죽었나요? 아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시고 대신에 양을 준비하셨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졌나요? 아니다. 물맷돌로 간단하게 골리앗을 이겼다. 믿음으로 반응했을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결과이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门徒)가 되지 못한다.”고 하는데, 자기의 모든 소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신뢰하고 자랑할 만한 모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의 명석한 두뇌, 학벌, 능력, 돈, 권력, 세상의 지혜 등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의지한다. 우리도 이것을 의지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단호히 버리라고 말한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信心)으로 주(主)께 나아오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이다. 제자(门徒)는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자이다. 세상은 자기능력, 이성과 지혜를 의지하지만, 너희는 나를 믿는 믿음(信心)으로 사는 자들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생각, 계획과 다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圣灵)의 인도가 있으면, ‘아멘!’ 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信心)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여 살 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恩典)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믿음(信心)으로 사는 주(主)의 제자(门徒)들이 다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